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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정보/인생

방랑인생#1. 서른살에 나는 왜 한국을 떠나게 되었을까?

내일 모레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어린 아이를 두고 있는 애아빠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잠을 깨려고 씻고 나와서 블로그 글을 끄적인다.

아침 7시, 아내와 아이가 깨지 않게 옷을 입고,
최대한 조심하며 살금살금 밖으로 나온다.

아침 출근길 시간, 버스를 타보니 대부분
정장을 입은 회사원 차림이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버스 안이 가득찬다.
그 중에 나홀로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인천의 한 물류센터.
이곳은 내 직장이 아니고 단기 알바를 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물류센터 일자리만 넘쳐나는
요새 상황이다.

벌써 이 생활을 한지도 반 년이 넘게 흘러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하게도 일을 했다.
택배상하차, 물류센터, 냉동창고, 탁송 운전,
여러 공장들....

누군가는 궁금할 것이다. 왜?
나이도 있고 심지어 아이도 있는 애아빠가
직장을 들어가지 왜 그러고 사냐고?
또 그동안 뭐했냐고?

사실 어디에서부터 얘기를 풀어가야할지 모르겠다.
휴양지가 좋아 외국을 나와서 살았을 때부터?
아이를 낳고 제주도에서 살았을 때부터?
결혼 전 해외로 나왔을 때부터?

하지만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였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바로 '나'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치열한 한국의 평준화된 삶의 기준


지금 30대 후반 40대 가까이 있는 친구들은 이미 각각 자신의 직장에서 과장, 팀장을 맡고 있을 나이일 것이다.
정상적으로 20대에 회사를 들어가서 회사 생활을 했다면 말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인생은 계단을 올라가듯이 누구나 평준화된 기준이 있다.

학교다닐 때는 성적을 잘 올려서 좋은 대학으로 가기.
대학교에서는 학점 잘 받아 좋은 직장으로 취직하기.
직장에 들어 가면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하기.
결혼하면 아이 낳아서 기르기.
아이 낳으면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기.
아이 다 키우면 집이라도 해주기 위해 돈 많이 벌기.
부부 노후대책도 잊지 않고 해놓기.

정말 쉴 틈이 없고 정신없이 인생이 흘러간다.
여기서 벗어나면 사회적 낙오자로 손가락질 받고
도태되어 버린다.
하지만 저렇게 해서 얻는게 무었일까?
저기서 벗어난다면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저렇게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는거야!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세계 1위의 자살률을 보이는 국가다. 한국의 기형적으로 높은 자살률은
전세계 심리학계에서 아주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학술
자료라고 할 정도이다.

 

지난 4년 간 필리핀에서 살았었다.
필리핀은 세계적으로 못사는 나라에 속하지만 자살률은
반대로 낮다. 실제로 내가 만나본 필리핀 사람들은
삶은 고되고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기질을 갖고 있어서 항상 즐거워 보였고,
그들의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한국보다 높아보였다.

 

삶의 만족은 소득 순이 아니다.

 


물질만능주의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 아님을 통계가 보여준다. 너무 소득이 적어도 불만이지만 너무 많아져도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대 후반까지는 이 힘겨운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중간에 흔들리거나 방황을 했어도 사회가, 가정이 날 다시 그 계단을 오르도록 밀어넣었다.

너무 답답했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도저히 이 생활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형제, 친구, 직장 동료 등등 모든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30살, 인생 최초의 꿈을 꾸다!

고 김광석 님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처럼 29살이 지나가며 수많은 내적갈등과 불안 등이 몰려오던 어느 날,
우연히 아랍권에 대한 기사를 읽고 아랍 문화에 흥미가 생겨 자연스럽게 공부하기 시작한 아랍어.

아랍에 대한 각종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인생에
대한 목표가 생겼고, 아랍권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휘몰아쳤다.

그동안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하며 살았고, 설령 그것을 어겼더라도 최소한 내가 잘못했구나 하며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면 내 인생엔 내가 없었다.

그냥 시키니까, 괜히 저런 말씀하시는건 아닐거야,
나 잘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니까 저 말이 맞아.
이런 식으로 나의 생각은 없고 누군가의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되었다.
나도 뭔가 하고 싶었을텐데...
하지만 이미 너무 의존적인 사람이 되버려서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되버렸다.


그런 내게 아랍어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는 맛을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로 다가왔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고
더 그 언어에,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인생의 첫 목표가 생긴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삶을 벗어나고 싶었던 열망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2년 반의 짧았던 회사생활을 마치며 해외는
커녕 비행기 타고 제주도 밖에 가보지 않았던 서울 촌놈이
이집트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